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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봉선-내 고장 역사 지키기-20210217 울산제일일보



△유봉선 울산 동구의회 의원


역사는 공동체의 기억이다. 기억상실증이나 치매와 같이 개인이 기억을 잃게 된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공동체도 개인과 마찬가지다. 개인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는 것만큼이나 공동체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일제강점기에 울산은 일본과 거리가 가깝고 바다를 접하고 있어 많은 경제적 수탈을 겪었다. 동구 방어진에 있었던 ‘방어진철공소’나 남구 삼산동의 ‘울산비행장’ 등이 대표적인 증거다. 그럼에도 울산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침탈에 꺾이지 않고 쉼 없이 저항했다.


하지만 울산은 여러 이유로 고난을 겪었던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관심 있게 기억하지 못했다. 독립 이후 이어진 6·25전쟁으로 먹고사는 게 가장 큰 문제였고, 1960년대 공업도시로 지정된 후로는 숨 가쁘게 경제 발전이 이뤄지면서 역사를 되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일자리를 찾아 울산으로 온 이주민이 타 도시보다 훨씬 많았던 것도 한 가지 요인으로 꼽힌다.


필자는 지난 2019년 2월 동구의회 제179회 임시회에서 울산 최초로 ‘울산광역시 동구 항일독립운동 기념에 관한 조례안’을 만들었다. 이 조례는 동구의 역사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한 선열들의 역사를 제대로 관리하는 게 목적이다. 항일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항일독립유적의 발굴·보존사업, 항일독립운동 추모사업 등을 추진하고, 지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조례를 근거로 항일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동구의 사업이 본격화됐고, 보성학교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울산의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지였던 민족사립학교 보성학교와 설립자인 성세빈 선생의 기록 및 유품이 전시돼 있다.


1909년 처음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성학교는 1945년 폐교될 때까지 총 49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동구 출신으로 유일하게 서훈을 받은 서진문 선생(건국훈장 애족장)과 이효정 선생(건국포장)뿐 아니라 박학규, 김천해 선생 등 울산에서 적극적으로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을 펼쳤던 항일독립운동가들이 교원으로 재직해 독립운동의 산실로 불렸던 곳이다.


보성학교 전시관이 건립됐지만 아직 과제가 남아 있다. 우선 보성학교 전시관이 현충시설로 지정되어야 한다. 보성학교 터는 지난 2010년 진행된 국내 항일독립운동 및 국가수호 사적지 조사에서 최하 등급인 C등급을 받아 ‘독립운동사적지’로만 등록된 상태이다.


성세빈 선생의 서훈 지정도 이뤄져야 한다. 선생은 1920년 4월 일산리에 처음으로 노동야학을 만들어 문자보급 운동을 펼쳤고, 울산군청년연맹 집행위원과 검사위원, 동면지역 5월 청년동맹 집행위원장, 신간회 울산지회 초대 부회장과 집행위원 등을 지내며 항일투쟁에 나섰다. 경성 종로경찰서에서 일본으로 보낸 ‘조선의 요시찰 인물 경성 종로경찰 조사서’에도 선생의 이름이 적혀있을 정도로 서훈 지정의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 배운 역사만 주로 기억하다 보니 교과서에 소개되지 않은 지방의 수많은 역사는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독립운동의 역사만 보더라도 유관순, 김구, 안중근, 윤봉길 등 유명 독립운동가들은 이름만 들으면 그 업적이 떠올려지지만, 지역 독립운동가들은 이름조차 모른다.


때문에 보성학교와 성세빈 선생이 지금 시대에 부활하기 위해서는 동구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내 고장의 역사를 지키겠다는 의지와 잊혀지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을 가진 주민들이 늘어나야 한다. 그리고 내 고장의 역사가 제대로 평가받고 대우받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역사에 관심을 갖는지, 어떤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지가 미래를 결정한다고 했다. 이번 주말 보성학교 전시관을 찾아 내 고장 역사 지키기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