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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건축가와 정치인이 닮은 점-20210317 울산제일일보


△ 강혜경 울산중구의회 행정자치위원장/ 생활환경학 학술박사


30년 전 유학 시절, 일본의 유명 건축가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려면 3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술을 잘 마셔야 하고, 둘째, 조강지처와 헤어져야 하고, 셋째, 자기가 설계한 집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풀이 자리에서 농담 반으로 내뱉은 말이라서 그때는 우스갯소리로 들었지만,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니 새삼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술을 잘 마셔야 하는 이유는, 독자들의 상상 그대로다. 일본에는 목조건축사, 1급 건축사, 2급 건축사 등 종류가 우리보다 많은 데다 그 수도 100만 명 가까이 된다. 수주 경쟁이 심한 탓에 보통의 건축사는 사무소를 혼자 또는 직원 1∼2명의 작은 규모로 차리고 주로 단독주택 같은 소형 건축물을 설계하며 생활한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큰 프로젝트를 따내려면 본연의 설계기술 외에 ‘영업능력’이 필요하다. 술은 일본이나 우리나 접대문화의 기본 요소다. 권하는 술을 사양하면 결례요, 술이 약하면 인격적 미숙아 취급을 받는 것이 우리네와 비슷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특히 건축설계야말로 내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건축주’로부터 일을 따내지 못하면 성립할 수 없는 직업 영역이니 더욱 그렇다.


조강지처를 버리라는 말은, 좋게 해석하면 건축설계가 일종의 예술 영역이다 보니 사회 통념이나 기존 설계 기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질 때보다 수준 높은 작품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즉, 동의하고 싶진 않지만, 처자식이나 가정을 우선시하는 보통 사람은 유명 건축가가 되기 힘들다는 반의적인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설계한 집에 살지 말라는 것도 반의적이다. 유명작가는 초지일관 자신의 작품성을 추구하고, 그것을 토대로 더욱 유명해지는 존재이다 보니, 실은 건축주의 ‘생활’보다는 건축의 ‘디자인’을 우선하기 때문에 실제로 살아보면 불편한 집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대학에서 주택계획을 오래 강의하기는 했으나 직접 건축설계를 직업으로 가져본 적은 없다. 따라서 건축가는 고사하고, 유명 건축가가 되려는 맘조차 먹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3년 전 처음으로 구의회 의원이 된 후 의정활동을 해 오면서 30년 전 들었던 앞의 이야기를 소환해 보았다. 유명 건축가가 되기 위한 조건과 구의원으로 정치무대의 말단에서 밥을 먹다 보니 이 두 직업이 꽤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필자로서는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의 일상은 잘 알지 못하지만 직접 경험해 본 구의원의 경우,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의정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어디 술뿐이랴. 매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유권자이기 때문에 그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하루 ** 이상의 밥도 먹고, 음식의 종류도 가려서는 안 된다. 노래도 장르별로 골고루 잘해야 하고, 춤도 잘 춰야 하며, 기억력도 비상해야 한다. 한번 인사한 분을 못 알아보면 치명상을 피하기 어렵다. 언제나 나를 버리는 자세로 살아가야 제대로 된 의원으로 평가될 수 있다.


구의원은 가정도 반쯤은 버려야 한다. 스스로는 워라밸을 유지하려고 무지 애를 쓰지만 가족의 불만과 불평은 늘상 곁에 따라붙는다. 차라리 배우자가 멀리 타지로 부임을 가거나, 자식도 시부모도 친정부모도 가까이 없어야 의정활동이 편하다. 노모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자꾸만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 사적이지만 중요한 시간을 할애하면 금세 비난이 들린다. 요즘 왜 안 보이느냐, 의정활동 제대로 하고 있느냐…. 그도 그럴 것이 구의원의 활동을 예의 주시하는 많은 분들은 항상 의원이 자기의 말을 가장 먼저 들어 주고, 자신이 부를 때는 언제든 달려와 주고, 어떤 내용이든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뿐이 아니다. 소속 정당은 물론 각급 기관단체와 관련된 공사 간의 활동에도 두루두루 얼굴을 비쳐야 하고, 해내야 하는 일이 있다. 모두가 똑같이 가지고 있는 24시간이지만 정치만큼 남의 시선과 의지에 휘둘리는 일이 더 있을까 싶다. 칭찬받는 구의원이 되려면 가정을 멀리하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 같다.


결국 나를 버리고, 가정을 멀리해야 하는 정치 풍토 속에서 구의원과 같은 말단 정치인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성취는 무엇일까. 세련된 겉모습을 갖춘 설계 성과로 상을 타고, 또 많은 동료 건축가의 칭송을 받지만 결국 자신조차 살고 싶지 않은 집을 짓는 유명 건축가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 이제 약 1년 후면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다. 이미 현역 정치인들은 표밭을 다지기 위해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신진 정치지망생들도 자천타천으로 ‘뺏지’에 대한 꿈을 부풀리고 있다. 선거라는 출발선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지금 내가 아닌 모습을 강요받는 우리네 정치 풍토 속에서 나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정치적 꿈은 진정 무엇인지 우리 모두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