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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아파트단지가 만드는 불통(不通)도시-20210629 울산제일일보



△ 강혜경 울산광역시 중구의회 행정자치위원장·생활환경학 학술박사


‘단지(團地)’의 사전적 의미는 ‘주택, 공장, 작물 재배지 등을 계획적이며 집단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사전의 설명처럼 ‘사택단지’, ‘아파트단지’, ‘농공단지’같이 쓰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도시’와 ‘단지’는 전혀 다르며, 두 시설이 조화를 이룰 때 도시도 발전하고 시민 생활도 편하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도시는 ‘아파트단지’가 도시공간을 차지하면서 우리네 ‘도시’를 ‘단지’로 바꾸어 버리고 있다.


아파트단지 이전에 만들어진 대규모 주거단지로는 사택단지가 있다. 국가 주도로 울산에 처음 대규모 공장이 들어선 1960년대는 주택이라고 해 봐야 성남동, 옥교동 같은 중심부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왜식 적산가옥이 남아 있었고, 우정동이나 교동처럼 시내에서 한 걸음만 더 나가도 동네 부잣집 한두 집을 빼면 대부분 초가삼간이었다. 이처럼 절대적으로 주택이 부족한 데다가 주택가에서 먼 해안지대에 공장이 건설되면서 자가용도 대중교통도 없다 보니 출퇴근도 문제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울산의 사택단지였다.


그런데 사택단지는 울산에 있었지만, 사택공동체는 울산지역과 별 연관성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사택은 회사소유인 데다가 구성원들의 생활도 회사 공동체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공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사택은 동시대 울산과는 다른 곳이었다. 즉, 주민공동체 생활이 사택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택은 인접 지역과는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정문 경비실과 사택 담장이 외부인 출입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도시계획의 왜곡에 있었다. 1960년대 울산의 사택단지는 지금의 문수로와 수암로 주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이 도로가 유일한 통근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시계획보다 먼저 건설된 사택단지는 이후의 계획적 개발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는 수암동 일대의 복잡한 가로망과 반듯하게 구획이 정리된 남구의 다른 곳을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런 사택단지와 아파트단지는 강한 영역 분리와 단지 출입 통제방식에서 많이 닮았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편리성과 재산 가치 측면에서 아파트를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그중에서도 일류 업체가 지은 이른바 ‘브랜드 아파트’와 대규모단지, 그리고 고층아파트를 특히 좋아한다. 이들 단지는 예외 없이 대단히 편리한 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지 보안이 철저해서 정문 출입부터 까다롭게 통제하고 있다. 거의 모든 아파트에 차단기가 있고, 경비실이 있다. 브랜드 아파트일수록 입주민들의 프라이드도 대단하다. 당연해 보이는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아직은 제대로 된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섣부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단지화가 진행될수록 도시공간의 소통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모든 아파트단지는 기본적으로 서로 격리되고 분리되어 있다. 단독주택지를 재개발해서 대규모단지를 만들 경우 기존의 도로망이 단절될 뿐만 아니라, 단지 전체가 장벽이 되어 버린다. 중구 구시가지를 예로 들면, 현재 성남동과 옥교동의 상업지역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이 아파트단지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아파트단지 개발이 완료되면 장차 중구지역은 모두 단지로 갈라지고 쪼개져서 자유롭게 소통하는 도시공간은 사라지고 문을 걸어 잠그고 담을 높이 친 ‘단지’로 가득 찰 것이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모습인지 도시적 차원의 반성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