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혜경 울산 중구의회 행정자치위원장/생활환경학 학술박사
올여름은 짧은 장마가 끝나고 나서 기나긴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날씨에는 어릴 적 기억 속 기와집에서의 추억이 생각난다. 여름이면 대청마루에 누워, 차가운 마룻바닥이 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걸 즐기고 지금의 에어컨보다 시원한 바람이 마루 틈으로 올라오는 걸 신기하게 체감하곤 했다.
그런데 과거 이런 한옥은 너무 많아서 귀한 줄 몰랐지만, 어느새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지금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마루가 시원했던 그 한옥들은 양옥들에 밀려 사라져 버렸고,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기차 타고 나사리 해수욕장 가던 옛 울산역도 흔적이 없다. 이런 우리 곁의 전통 한옥이나 철도역사와 같은 근대유산이 철거된 이유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정문화재는 대단한 역사적, 경관적 가치를 지녀야만 지정이라는 행운을 누린다. 손때 묻은 우리 곁의 향토문화유산은 등급 기준에 밀려서 아무런 보호조치도 받지 못하고 개발 바람에 밀려서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울산시 중구에서는 현재 ‘중구향토문화재보호조례(안-이하 ‘보호조례’)’를 준비 중이다. 예정대로라면 다음달 초에 이 ‘보호조례(안)’는 본회의를 거쳐서 시행될 것이다. 앞으로는 울산시 중구 관내의 향토문화재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은 건축물뿐만이 아니다. 그래서 ‘보호조례’ 2조(정의)에 지정문화재가 아닌 중구 관내의 역사, 문화, 예술적 가치를 가진 문화유산과 이에 버금가는 유형·무형의 자료(건조물, 서적, 고문서, 조각, 공예품, 민속자료, 명승지, 연극, 음악, 무용, 공예 기술, 의식, 음식 제조 등)를 폭넓게 보호할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보호조례’ 시행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유형 문화자산 중에 노거수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중구에는 현재 13곳의 노거수, 혹은 노거수 군락이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 중에는 동동 산전마을, 태화동, 우정동 강정마을, 유곡동 길촌마을, 반구동 내황마을처럼 동제를 모시는 당수나무도 5그루나 있다. 당수나무의 경우는 과거 기록을 보면 북정동 동헌 앞에도 ‘신목’으로 불리던 느티나무가 있었고, 교동에도 큰 팽나무가 있었다. 유곡마을과 약사마을에도 당수나무가 있었지만 모두 혁신도시 등의 개발로 사라졌다.
이처럼 동제를 모시던 당수나무가 사라진 것은 개발 당시 동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당수나무가 서 있는 토지 소유 관계다. 개발 바람이 불면서 토지 가치가 높아지자, 이전에는 문제 삼지 않던 당수나무 서식지를 돌려받으려는 소유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중구 관내의 보호수 13그루는 공원녹지과가 관리하고 있는데, 해마다 구비와 시비 2천만원으로 업체에 위탁하여 생육환경 개선 중심의 관리를 하고 있다. 당수나무의 경우는 생육환경 개선만으로는 보호·관리가 완전하다고 하기 어렵다. 이번에 추진 중인 중구의 ‘보호조례’는 이런 당수나무 보존과 보호에도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구향토문화재보호조례가 본격 시행되어서 중구 관내의 문화유산이 생명을 연장하고, 또 한여름 폭염을 식혀주고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던 당수나무 같은 노거수가 더욱 싱싱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우리를 지켜보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