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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더 이상 생명과 안전을 양보할 순 없다-20211215 울산매일

산업현장 위험한 일 외주·용역업체에…관행처럼 굳어져

중대재해처벌법 내년 시행…사고 시 책임자에 형사처벌 

처벌 목적 아닌 재해 ‘예방’에 방점…안전을 최고 가치로



▲ 박병석 울산광역시의회 의장


3년 전 이 무렵, 분노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일이 있었다. 

2018년 12월 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세 청년 김용균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것이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면서 방치한 결과이자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비극이다. 사망 사실을 인지하고도 경찰과 119에 신고하지 않았고, 병원으로 옮길 때까지 무려 다섯시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대책 회의만 거듭한 발전소 측의 행동은 황당 그 자체였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사망 통계에 따르면 2020년에만 산재사고로 882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하루에 2.4명의 노동자가 출근했다가 산업 현장에서 죽음을 당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산재 사망자가 985명에 달하던 50년 전 1970년대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산재사고 유형도 특별하지 않다. 매번 반복되는 추락, 끼임, 부딪힘 등 이른바 ‘재래형 산재’라고 불리는 사고들로 기본적인 방호 설비, 안전조치만으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산업 현장에서 산재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데는 기업이 안전은 뒷전으로 하고, 이윤과 생산성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은 책임소재에서 자유롭기 위해 외주업체 또는 용역업체에 맡기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분명, 일터에서 일하다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었는데도 어느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 책임지겠다는 기업도 없다. 그러니 아무리 안전이 중요하다 소리 높여도 산재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원인일 것이다.

매번 반복되는 산업 현장의 중대 재해를 근절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마련됐다. 바로 올해 1월 8일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기존에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단위 사업장의 책임자 내지 실무자 위주로 형사처벌이 이뤄져 산재사고의 예방이 미흡했다면, 법 시행으로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강화됐고, 이를 위반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책임 범위도 도급, 용역, 위탁 등 관계에서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규정돼 그동안 대기업, 원청업체가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 등에 맡기고 산재사고가 발생해도 나 몰라라 하던 관행은 이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제는 기업이 안전사고를 예방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성장할 수 없다는 마지막 경고인 셈이다. 법 시행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와 기업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준비와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

먼저, 정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체, 노동자,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기업체가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제정되고, 고용노동부가 해설서까지 내놓았지만 사고 책임 소재에 모호한 부분도 있다. 해석의 여지가 많거나 모호한 부분에 대해 새로운 갈등이나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서둘러 법령을 정비하고 보완해야 한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은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고, 재해 발생 대책을 수립하는 등 공공부문부터 중대재해 예방 강화에 앞장서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리고 산재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민간부문에 대한 지도와 감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기업은 이윤 위주의 경영에서 벗어나 안전을 최우선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 먼저, 안전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안전한 작업환경 만들기에 최우선으로 투자해야 한다. 사고유형을 분석해 필요한 안전시설이 무엇인지 조사해 최우선 투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험한 일을 외주화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안전한 작업을 요구받거나 안전에 위험이 되는 요소들을 발견하는 경우 신고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법 시행을 앞두고 ‘노동 악법’, ‘기업 재해법’ 등 무성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 목적이 아닌 산업재해 예방에 방점이 찍혀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비슷한 법률을 시행 중인 영국은 기업과실치사법(기업살인법) 제정 이후 산업재해가 확연히 감소했다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침에 출근한 노동자가 저녁에 정상적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업, 정부, 노동자 모두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할 것이다.

안전이 곧 이윤으로 직결되는 만큼, 기업이 노동자의 안전에 더 많은 관심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