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욱 울산 동구의회 의원
행정당국에서 한번 결정한 정책의 방향을 돌리는 것은 어렵다. 잘못된 방향으로 마무리된 정책을 바로잡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는 각종 정책이 행정절차와 관련 법률 검토 등 복잡한 과정 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정당국은 어떤 정책이든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울산 동구에는 주민들이 정책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업이 있다. 2015년 5월에 준공된 이 사업은 울산 남구 매암동에서 동구 일산동에 이르는 길이 8.38㎞의 연결도로 개발사업이다.
울산 안에서도 동구는 지리적으로 동쪽 끝에 위치한 탓에 도로 인프라가 가장 열악했다. 염포산 오른쪽에 도시가 형성돼 외부로 나가려면 방어진순환도로를 이용해 북으로든 남으로든 많이 돌아가야 했다. 동구로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로의 폭도 좁아 출퇴근 시간이면 교통정체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대표적 사회 간접자본인 도로 인프라는 수혜 지역 주민들의 통행시간, 차량운행비용 등을 줄여 그 지역의 위치적 매력을 키우고, 경제 활성화도 유도한다. 이런 관점에서 울산대교와 염포산터널 건설은 동구 주민들로서는 두 손을 들고 반겨야 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 계획이 변경되면서 동구 주민들에게는 그 의미가 엷어졌다. 초기에 염포산터널은 울산대교와 상관없이 울산시 단독 재정사업으로 추진되다가 1997년 외환위기(IMF 구제금융)로 인해 중단됐다. 이후 2000년대에 이 사업이 다시 추진되면서 수익형 민간투자사업(BTO)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동구 주민들은 내 집 안마당을 오가면서도 통행료를 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울산 5개 구·군 가운데 고속도로를 제외하고 유료도로 운영의 부담을 져야 하는 곳은 동구밖에 없다.
동구 지역 사회가 유료도로 조성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민간사업자가 울산시에 민간투자사업 추진 제안서를 제출했던 2004년 당시 동구 지역 국회의원 등 정치권은 반대 의사를 밝혔고, 사업 착공을 앞둔 2009년에는 정치권과 지역 시민사회단체, 주민이 통행료 무료화 서명운동을 함께 펼쳐 5만 3천여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개통을 앞둔 2015년에도 무료화 운동을 벌여 4만여 명의 서명을 받았고, 2017년 시청 앞에서 시민궐기대회를 열어 통행료 인상 반대와 무료화 대책 마련을 강력하게 요구한 일도 있다. 또 지난해에는 정치권과 주민들이 3만5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울산시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잘못된 방향으로 마무리된 정책을 바로잡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동구 주민들의 통행료 무료화 요구가 끊이지 않았지만 울산시의 입장은 언제나 ‘불가능’이었다. 통행료 무료화를 위해서는 울산시가 민간사업자로부터 관리·운영권을 사서라도 직접 운영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미 민간투자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시설물에 대해 국비를 확보할 법적 근거가 없었고, 3천억 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울산시 단독으로 부담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었다.
다행히 최근 울산시와 동구가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동구 발전전략과 정책지원 방안’을 공동 발표하며 염포산터널 통행료 무료화를 선언한 것이다. 대상은 염포산터널 구간의 일일 통행 차량 중 37%가량을 차지하는 동구 주민이다. 무료화에 필요한 예산 약 40억 원으로 울산시가 80%를 부담하고 동구가 20%를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시행은 운영사인 울산하버브릿지(주)와의 협상과 결제시스템 구축, 지원 근거 조례 제정 등의 절차를 거쳐 올해 하반기부터 이뤄질 예정이다. 울산 내 다른 구·군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무료화 적용 구·군 문제는 추가로 협의해 가기로 했다.
무료화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전면 무료화가 아니라 세부 사항에 대한 면밀한 추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통 7년 만에 동구 주민들의 목소리에 행정당국이 응답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시작이 반이고, 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다. 이번 무료화 결정이 동구 발전에 크게 기여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