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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형-‘보리’와 울산-20220113 울산제일일보



▲ 김미형 울산광역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


오래전부터 김훈 작가의 작품을 애독했지만, 그 시절에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제대로 감상할 줄 모른 채 그냥 지나쳤었다. 새해를 맞아 김훈의 증보판 ‘개’를 읽었다. 댐 공사로 마을이 수몰 직전에 놓인 시골 노부부가 키우는 어미 개가 **를 낳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네 마리의 강아지 중 주인공 진돗개 ‘보리’는 셋째다. 보리밥을 잘 먹어 ‘보리’로 불리게 된 ‘개’의 눈으로 사람들의 삶을 보고, 듣고, 느끼고, 함께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냈다.


김훈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개를 얼마나 오래 살펴봤을까? 마치, 개가 사람이 되어 글을 쓴 게 아닌지 착각할 정도로 끈질긴 관찰 끝에 개의 시선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김훈 작가의 풍부한 묘사력과 감성을 건드리는 서정적인 표현 덕분에 보리와 함께 살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보리의 눈으로 보는 자연의 모습은 그 문장이 세밀하고 감각적이어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주인공 보리의 맏형은 동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며 앞다리가 부러진 채로 태어난다. 보리 엄마는 앞다리가 부러진 맏형이 개로서 한평생을 온전히 살아갈 수 없음을 예감하고 곧바로 죽여버린다. 이 부분은 인간의 시각으로 절대 이해하지 못할 장면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진정 인간의 눈으로 개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상상조차 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김훈 작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생생하고 절절하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인간의 눈으로 개를 이해하고 쓴 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이해와 공감이 되기도 했다. 보리는 항상 긍정의 힘을 가지고 세상의 온갖 구석구석을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그 느낌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눈, 코, 귀, 입, 혀, 수염, 발바닥, ***, 꼬리, 머리통을 쉴 새 없이 굴리고 돌려가며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노리고, 물고, 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엎어지고,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터득해 나간다. 행복은 세상과의 교감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란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보리의 후각을 통한 흥미로운 묘사들이 많다. 그 표현은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평생 농사일로 살아온 할머니의 흙냄새와 통나무 냄새, 통통배를 타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주인님의 경유 냄새, 시내에서 나는 지린내와 화장품 냄새, 정말 무섭고 징그러운 냄새는 다름 아닌 경쟁자인 악돌이가 싸놓은 오줌 냄새다. 대단한 것은 자연의 모습까지 냄새로 묘사하는 점이다. 물과 바람과 햇빛의 향기까지, 후각이 예민한 개는 무색무취의 사물을 이렇게 느낄 수 있다는 작가의 섬세한 표현이 너무나 위대하게 느껴졌다.


보리의 삶은 정겹고 사랑스럽다. 주인의 딸을 학교에 바래다주기도 하고, 학교에서 아름다운 흰순이를 만나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며, 무시무시한 사냥개 악돌이를 만나기도 한다. 온 동네를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만든 기억들이다. 부지런히 몸뚱이를 비벼서 얻은 경험, 발바닥 굳은살이 증명하는 현장 체험의 삶이다. 마지막까지 자신답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보리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자신의 날이 계속되는 동안 힘차게 살아가는 데만 집중한다. 보리에게 자신의 마지막이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래서 보리는 오늘도 힘차게 살아간다.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고 달릴 것이다.


보리를 읽고 울산을 생각해봤다. 반려동물의 시대를 맞아 울산도 지난 2020년 애니언파크를 개관하면서 반려 친화 도시를 표방하고 나섰다. 공존과 배려의 반려문화 조성을 시작으로 3대 분야 15개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작년에는 반려문화 산업박람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특히, 필자가 살고 있는 동구에도 봉화재 반려견 놀이터가 준공되어 사람과 개가 공존하는 반려문화 조성에 나서고 있다. 이곳은 지난 40년간 화장장으로 혐오와 기피의 장소였지만, 이제는 친근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새해 들어 남구청은 반려동물 업무를 전담하는 반려동물정책계를 신설했고, 울산소방본부는 누리집에 119에 구조된 반려동물 찾기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022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반려동물과도 교감하고, 시민과도 더 소통하는 의정활동을 펼쳐지도록 혼신을 다하겠다고 다시금 다짐해본다. 코로나 사태로 어렵고 힘든 시기, 소설 속 보리처럼 긍정의 에너지가 모든 사람에게 전이되어 위기를 함께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