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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욱-울산국립병원, 공감의 기억이 먼저다-2018.8.28(울산신문)

울산국립병원, 공감의 기억이 먼저다 
 -울산신문 오피니언 기고 2018.8.28

김시욱 울주군의원

"10만년 후에도 인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땅을 찾아라!"

핀란드는 1978년 원전을 도입하자마자,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핀란드 지질조사소(GTK)는 땅 속 깊숙히 묻어 영구 처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1984년 162개 가능지역을 선별한 뒤 61개로, 또 5개 후보지로 좁혀 나갔다. 그리고 2001년 핀란드 국회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인구 6,000명의 작은 도시 에우라요키를 최종 결정했다.

이 과정에 정치 논리마저 극복했다. 핀란드 정부는 약 10년간 핀란드 전국에 대해 지질조사를 실시했으며, 20년 가까이 철저한 과학적인 조사로 탈핵 정책노선을 표방하는 핀란드 녹색당마저 찬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연구를 주관한 GTK는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연구과정 중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 또한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라며, 반대 측과 토론하고 소통하며 모든 자료를 일반에까지 공개했다. 지금도 GTK가 연구한 자료는 인터넷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역 주민들이었다. 물론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때 시설관리기관이 직접 나섰다. 원전 운영회사가 출자해 설립한 포시바라는 법인은 최종 후보지가 5개로 압축되자, 이 5개 후보지역에 사무소를 열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이미 1994년에 개정된 핀란드 원자력법은 '주민이 반대하는 지역에는 영구히 건설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을 명문화했지만, 이러한 소통과정을 통해 에우라요키 주민들은 스스로 유치를 결정한 것이다. 세계 첫 고준위방폐장인 핀란드의 '온칼로(핀란드어로 숨겨진 곳)'는 그렇게 시작했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울산국립병원 설립이 울산의 주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혁신형 공공병원 설립이 대통령선거 공약이었고,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국공립 종합병원이 없는 울산의 형편이다 보니 이번만큼은 꼭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절박함도 크다. 앞서 말한 핀란드의 온칼로는 기피시설이지만, 국립병원은 환영해 마지않는 사업이다. 님비가 아니라 핌피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지역에 쓰레기 소각장 같은 혐오시설은 절대 들어오면 안된다는 님비(NIMBY : Not In My Back Yard)현상, 그리고 국책 사업시설 같이 돈 되는 사업은 꼭 우리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는 핌피(PIMFY : Please In My Front Yard)현상에 있어 구체적 행동은 정반대다. 뒷마당에라도 절대 안 된다는 단호함과 앞마당까지 내어주며 호소하는 절박함도 다르다. 하지만 그 근원적 심리는 동질하다.

바로 지역이기주의다. 이미 각 기초단체의 움직임이 심상찮고, 앞으로 유치과정에서 경쟁과 갈등도 있을 수 있다. 핀란드 온칼로의 교훈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학적 사실(경제·타당성 등 객관적 연구조사자료)과 투명성을 통해 충분히 토론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핌피에 내재된 지역 이기주의는 그 과정에서 자연 소멸될 것이며, 울산국립병원은 기초자치단체가 아닌, 울산 전체의 미래지향적인 어젠다로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굳이 광역시 가운데 사망률 1위라는 무시무시한 통계를 앞세우지 않더라도, 지난 세월 우리가 그토록 국공립병원을 염원했던 까닭은 나와 내 가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공병원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믿을만한 병원이 없어서, 의사가 부족해서, 의료기술과 장비가 부족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서울로, 부산으로 떠나야 했던 이웃들이 곧 나와 내 가족임을 알았고, 이는 곧 울산시민의 문제라는 인식에 모두가 공감했던 것이다.

울산국립병원의 시작, 굳이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님비와 핌피 사이,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가졌던 그 공감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먼저다.

출처 : 울산신문(http://www.ulsanpres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