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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욱-울산 동구와 조선해양플랜트연구원-20181126

울산 동구와 조선해양플랜트 연구원
-경상일보 오피니언 [기고]-2018.11.26

 

정용욱 울산 동구의회 의원

 

 방어진 어촌마을에 조선소가 들어선 지도 40년이 훌쩍 넘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1971년 조선소 부지를 울산으로 확정하고 1972년 미포만 백사장에서 기공식을 개최했다. 현대조선소는 이후 한국 조선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고,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도 울산, 특히 동구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공격적으로 세계 각국의 선박 발주를 흡수하고 설상가상으로 국내 조선사는 해양플랜트사업을 둘러싼 경험부족과 세계 오일시장에 대한 판단 실수로 조선산업 전반에 위기를 초래했다. 위기는 현재 진행 중이며 IMF사태 때도 피했던 구조조정의 칼바람속에 동구는 실업자가 증가하고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나고 있다.

조선산업이 어려움에 빠진 이유가 해양플랜트사업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체계적인 조선해양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한다는 분위기속에 연구원 유치효과에 대한 분석 결과도 나왔다. 울산발전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연구원 유치 시, 생산유발효과 9306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2914억원, 취업유발효과 4128명 등으로 경제성과 정책적 타당성이 충분한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지역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동구에 조선해양플랜트연구원이 설립되면 경제적 효과는 물론, 생산현장과도 가까워 연구원의 과제 수행 등 연구 개발에도 큰 이점이 있다. 특히 조선산업이 인건비 경쟁의 패러다임에서 고부가가치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고 이는 앞으로 조선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단적인 예로 오는 2020년부터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해양환경규제 국제해사기구(IMO) 2020’ 규제가 발효되는 것을 목전에 두고 있다. IMO 2020174개국을 회원으로 둔 IMO202011일부터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 상한선을 3.5%에서 0.5%로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게 주요 골자이다. 이는 산성비를 유발하는 황산화물(SOx) 배출을 막기 위한 목적인데, 운송에서 발생하는 전체 산화황 배출량 중 약 90%는 선박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이 규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크게 3가지 방안이 대두되고 있다. 첫 번째는 연료를 저유황유로 바꾸는 것, 두 번째는 탈황장치인 스크러버를 선박에 설치하는 것, 세 번째는 연료 자체를 LNG로 바꾸는 것인데 이것은 LNG 선박을 새로 건조하여야 한다. 첫 번째 대처방안을 제외하면 나머지 방안은 조선 기술력과 관련된 문제이다. 한 매스컴에 따르면 황산화물 배출 감소를 위해 장착하는 스크러버 시장은 현재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이고 LNG선 건조능력은 이미 기술경쟁에서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렇게 조선기술은 점점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고 조선산업이 노동 집약산업에서 첨단기술 융복합산업으로 거듭나 조선산업 후발주자와 기술격차를 벌리기 위해서는 조선해양플랜트 연구원 설립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울산 동구에 거주하는 많은 주민들은 타지에서 이주해 평생을 조선소에 몸담았거나 조선소 직원을 가족으로 두었다.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동구의 경제, 울산의 경제, 나아가 대한민국의 경제를 일으킨 주인공이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를 항상 걱정하며 용접, 도장, 취부 등 선박제작의 기본작업을 해왔고 조선산업의 기틀을 마련해왔다. 조선소가 생기기 이전부터 동구에 살았던 토박이 주민은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이주를 하게 됐고, 이전에 살던 마을은 오롯이 조선소 부지가 되었다.

이처럼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모태라는 상징성과 연구개발이 용이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조선소에 청춘을 바치고 삶의 터전도 내어준 동구에 조선해양플랜트연구원이 들어서는 것은 정치적 논리가 아닌 당위성을 띤 문제이고, 이를 토대로 연구원 유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구 주민의 염원이기도 하고 지난날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보상이자 영광을 되찾기 위한 재도약의 발판이기도 하다. 인생의 후반기를 걷고 있는 지금, 가끔씩, 필자가 어렸을 적 소꿉친구들과 뛰어놀던 동구의 모습을 추억한다. 조선소가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드넓은 조선소 부지에 해운대 못지 않은 멋진 백사장과 해수욕장이 펼쳐쳤을 그림을 상상해 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