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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성-100년전 그날의 함성, 오늘의 울림으로 기억되길-경상일보2019.2.26

100년전 그날의 함성, 오늘의 울림으로 기억되길
경상일보 오피니언 [발언대]-2019.2.26

문희성 울산 중구의회 예결산특별위원장

100년 전 우리 민족은 일제의 침탈과 만행 앞에 피와 울분을 담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서울 종로구 지금의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만세운동은 들불처럼 퍼져 전국 각지에서 한 달 넘게 이어졌다.

 

우리 울산 중구에서도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191944일 당시 일신초등학교(지금의 병영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대회를 위장해 축구공을 하늘 높이 차 올리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수많은 주민과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해 병영 일대 거리를 만세 함성으로 메웠다.

 

이튿날인 45일까지 이어졌던 병영만세운동은 결국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발포로 인해 김응룡, 문성초, 엄준, 주사문 등 4인의 열사가 그 자리에서 순국하고 시위를 주도했던 22인의 의사가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병영만세운동의 특이점은 거사 준비까지 한 달 이상 소요됐음에도 불구하고 기밀이 유지돼 성공적 시위가 이뤄졌으며 거사 후에도 순국한 4인 열사와 체포된 22인의 의사 외에는 단 한사람도 피해가 없었던 점이다.

 

뿐만 아니라 22인 의사가 옥고를 치를 당시 병영 주민들이 몰래 옥바라지를 도왔을 정도로 병영은 공동체적 유대가 깊었고, 이를 지금까지 병영 주민들의 힘이자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특히 병영에서 만세운동이 유독 강하게 일어났던 이유에 대해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가늠해 봄직하다. 1926126일자 매일신보에 따르면 병영은 구한국시대 군벌가의 군인과 가족들이 많아 독립애국 사상이 높았으며, 특히 청년들의 의지가 강건하고 단결력이 높아 일경의 관리가 어려웠다고 전하고 있다.

 

이처럼 병영은 옛날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영이 있었던 군사적 요충지로 다른 지역에 비해 외세에 대한 저항정신이 뿌리 깊었고, 지역에 무관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해 남다른 기개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병영 3·1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의미있는 행사가 준비중이다. 바로 ‘310인 주민대합창이다. 이번 행사는 병영지역 주민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고 오늘날 자긍심과 애향심 고취를 위해 마련됐다. 

특히 지난 2017년 병영성 축성 600주년을 기념해 열렸던 ‘600명의 시민대합창의 성공개최의 경험이 녹아 있어 이번 310인 주민대합창 역시 또 한 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물해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번 310인 주민대합창 역시 불변의 원칙은 관()이 주도해 주민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닌 민()이 철저히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한 주민주도형 행사라는 점이다. 

이는 과거 100년전 병영 3·1만세운동이 민중에 의한 자발적 항쟁이었던 점을 재평가하며 병영지역만의 역사적 사실과 교훈을 오늘날에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 주민 스스로가 의존적이며 수동적인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의 주체가 되어 권한과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공동체 예술을 표방하고 있다. 

무엇보다 합창은 조화와 화합, 협동과 배려를 모태로 구성원 각자의 목소리에 생명과 에너지를 담아내는 소리이기에 감흥 또한 곱절로 전해지는 힘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310인 주민대합창을 계기로 우리 주민들의 화합과 나아가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주민 스스로 축제에 참여, 기획하며 나아가 창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100년전 그날, 민족의 한을 담아 목 놓아 외쳤던 대한독립만세의 간절한 울분이 꼭 100년 후 오늘 우리가 이뤄낸 자랑스런 대한독립만세의 기쁨에 찬 울림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