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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민정-잊히는 역사를 향한 고찰-울산매일2019.3.4

잊히는 역사를 향한 고찰-울산매일 오피니언 [자치시대]-2019.3.4

경민정 울주군의회 의원

 

-‘31운동 100주년…역사 인식 재조명

-맨몸으로 항거한 뼈아픈 역사 기억하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고귀한 희생 새겨야

 

  삼 쩜…일? 어떻게 읽는 줄 모르겠어요

나라에서 31절 기념행사를 한다는 현수막을 보고 어린 자녀가 아버지에게 했다는 황당한 질문이다.

실제로 2010년 교총 전국 초․중․고생 3,919명을 대상으로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생 40%31절의 의미를 잘 모른다고 답했다.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 당면한 역사적 인식을 재조명 할 의무가 있다. 일제강점기, 총칼로 무장한 일본경찰에 맞서 맨 몸으로 항거했던 대한민국의 수많은 독립투사들. 그 분들의 숭고한 투쟁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결코 보장받을 수 없었다.

 

기억하기조차 싫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우리 민족의 참혹한 역사. 이것을 독립운동가 ()박은식선생께서는 韓國痛史한국통사라 명명했다.

(비통할 통), ‘韓國痛史한국의 아픈 역사. 

 

1915년 일제 강점기, 수많은 일본식이름을 팽개치고 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며 태백광노라는 이름으로 미친 척하고 살아가던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에서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라는 사라질 수 있으나 역사는 사라질 수 없다.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보존돼 사라지지 아니하면 형체는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특히,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에서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과정에 초점을 맞췄는데, 그러면서도 일제에 대한 독립 운동도 중시해 의병 활동은 역사적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높이 평가했다. 당시의 현인이었던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통사≫는 중국과 러시아 지역의 교포 사이들에서 널리 읽혀졌고, 1917년 미국 하와이에서도 출판돼 우리 교포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나라의 형체보다는 민족의 정신적 보존을 강조했던 고 박은식 선생의 이러한 의식은 31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열사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191931, 유관순 열사는 수천명을 이끌고 선두에서 자신이 만든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를 선창하고 시위를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유관순 열사는 일본경찰의 재판에 넘겨졌고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오히려 너희들이 죄인이다라며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옥중에서 만세를 부르다 또 다시 고문당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자행된 일본경찰의 잔인무도한 고문. 머리껍질 통째로 벗겨내기, ·발톱 뽑기, 변․쇳가루 등의 이물질을 위로 삽입하기, 면도칼로 코와 귀 자르기, 웅크리고 몸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상자에 대못박아 굴리기, 발가벗겨 대형 항아리에 미꾸라지와 함께 넣기(미꾸라지는 좁은 구멍으로 숨으려는 습성이 있음), 다른 열사들 앞에서 가슴 도려내기,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잔학한 고문 뒤에 이어진 성폭행. 당시 그녀의 나이 불과 17세였다. 

 

하지만, 이런 악한 속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향한 유관순의 마음만은 한 길을 걸었다.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은 고통은 견딜 수가 없다. 나라의 독립만세를 부른 것도 죄더냐.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유일한 슬픔이다. 대한독립 만세!’

 

1919년 기미년 31. 일본의 무력대응으로 인한 한국인 피해. 사망 7,509, 상해 15,850, 구금 45,306, 소각(민가 등) 764. (출처: 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스러져간 사람들. 너무나도 자명해진 죽음 앞에 맨 몸으로 저항해야했던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를. 잊히는 역사 그 뒤엔 또 다른 형태의 침략상실이 도래할 것이다. 나라는 사라질 수 있으나 역사는 사라질 수 없다.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픈역사를 기억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