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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욱-동구에 울리던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기다리며-20191006

동구에 울리던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기다리며

                                -울산매일-20191006

 

정용욱동구의회 의장

 


- 최근 몇 년간 조선업 불황 장기화 인한 경기침체 계속돼
- 동구 상징 ‘오토바이 물결’·‘노동자들 왁자지껄함’ 사라져
- 조만간 주민들 가슴 두드리고 아침 알리는 시간 다시 오길


퇴근시간 현대중공업 앞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자 장관이 펼쳐졌다. 여기 저기 기름때가 뭍은 회색 작업복에 흰 안전모, 갈색 작업화를 신은 노동자들의 오토바이 수백대가 일제히 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모든 도로에 거대한 오토바이 물결이 휘몰아치며 장관을 이뤘다. 
노동자들의 퇴근길을 책임진 오토바이는 대부분 125㏄ 스쿠터였다. 고급 오토바이는 아니었지만 수백대의 오토바이가 동시에 만들어 내는 엔진소리에는 수천억원대의 대형선박 같은 웅장함이 느껴졌다. 여기에 노동자들을 배웅하는 대형 크레인, 고단한 노동을 마쳤음에도 세계 1위 조선소라는 자부심이 새겨진 노동자들의 당당함이 더해져 울산 동구의 상징인 ‘오토바이 물결’이 완성됐다. 
오토바이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게는 최적의 이동수단이었다. 조선소 작업장 면적이 632만㎡에 달했던 터라 작업장에서 구내식당까지만 걸어도 20여분이 걸렸다. 조선소를 벗어나도 오토바이가 필요했다. 동구의 면적은 35.94㎢로 울산광역시 1,057.50㎢의 3.38%에 불과하다. 울산 5개 구·군 가운데 가장 좁다. 오토바이가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그래서 현대중공업에 입사하면 오토바이를 장만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조선소를 벗어난 오토바이들의 바퀴가 멈추는 곳은 활기가 띄었다. 1970년대에는 ‘울산 동구는 똥개도 500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풍요로웠다.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룬 전하동이 대표적이었다. 노동자들이 거주할 아파트단지·주택이 잇따라 지어졌고, 상가, 병원, 학교, 백화점, 문화센터 등도 들어서면서 동구에서 가장 발전한 지역이 됐다. 
전하동의 술집, 식당, 옷가게 등에는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어떤 조선소 노동자들은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쇠와 불을 다뤄야 하는 힘든 노동을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그 왁자지껄함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았고, 전하동 외에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동구는 조선소 노동자들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조선업 불황으로 인한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동구의 상징이었던 ‘오토바이 물결’과 ‘노동자들의 왁자지껄함’은 옛말이 됐다. 올해 추석명절을 맞아 출퇴근시간 현대중공업 서부문, 미포문, 현대공고문 등에서 노동자들과 주민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오전 7시 이후 온몸을 울릴 정도로 울렸던 오토바이 소리는 더 이상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구조조정으로 3만5,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탓이다. 조선소 노동자들이 동구를 떠나면서 함께했던 오토바이 엔진소리도 멈췄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떠나면서 오토바이 소리만큼이나 시끌벅적했던 상가들도 조용해졌다. 조선소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상권이 형성된 터라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하자 쇠락을 면치 못했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지역 상인들에게 ‘힘들다’, ‘어렵다’는 하소연을 듣는 게 일상이 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동구에서 최근 3년 간 무단방치로 신고된 오토바이는 1,400대가 훨씬 넘는다. 현대중공업 담장, 해수욕장,  아파트 지하주차장, 원룸 단지까지 동구 전역에서 버려진 오토바이가 발견된다. 조선소와 함께한 삶의 흔적을 지우기라도 하듯 번호판을 떼고 부품번호도 지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조선업계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계 수주 실적 1위를 탈환했고, 고용까지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보험 피보험자 기준 조선업 종사자 수는 올해 7월 말 기준 11만470명을 기록했다. 2015년 18만7,652명에서 2018년 말 10만7,667명까지 줄었다가 2,800명가량 증가한 수치다. 또 한국 조선업계는 지난 8월 전세계 선박 발주량 10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 가운데 73만5,000CGT로 73.5%를 수주했으며, 1~8월 누적 수주액은 113억 달러로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회복했다. 
울산 동구는 조선업 발전의 뜨거웠던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속에서 오토바이 물결은 주민의 자부심과도 같았다. 불황속에서도 동구주민들은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삶을 부여잡고 ‘제2의 부흥’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조만간 과거 요란했던 오토바이 엔진소리가 주민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아침을 알리는 시간이 다시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