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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찬-코로나, 국민 모두가 함께 싸울때 이긴다

코로나, 국민 모두가 함께 싸울때 이긴다

경상일보 2020.02.25

 

백운찬 울산시의회 의원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덮쳤다. 아니 국가 재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한국을 덮치고 있다. 코로나19 최초 확진자가 나온지 40여일. 처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하는 SNS에는 유언비어와 온갖 괴담이 난무하고 시민들의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불과 1주일 전만해도 확진자 30여명, 사망자 0을 가리키던 현황이 800번째 확진자를 훌쩍 넘어섰고 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정부 주도하에 잘 통제되었던 코로나 사태가 대구 신천지교인 31번 환자의 확진부터 다른 국면을 맞았고 아노미가 시작된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일본을 넘어 이제 우리를 코로나 관련 최고 관심국으로 두고 있는가 하면 문제의 발생국 중국마저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우려 섞인 평가를 일삼는다. 중국의 조업 재개 지연으로 곳곳의 공장에서 조업 차질이 빚어지는가 하면 전국의 금융권 점포들에서 임시 폐쇄도 잇따르는 등 경제현장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타난 대구와 경북 일부 지역은 거의 패닉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렀고, 확진자 동선에 따라 시민들의 일상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확진자 발생지역에는 어김없이 생필품 사재기, 마스크 매점매석 등 세계 10위권의 경제선진국, 동·하절기 올림픽은 물론 월드컵까지 우수하게 치러낸 우리국민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주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어려울 때 빛을 발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데 우리의 정치는 또 어떤가. 침묵을 지키던 정치권은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네 탓 공방으로 국민들을 피곤하고,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실로 불안과 좌절감의 연속이다.

우리는 정말 이처럼 무기력한 국민이었나. 5년 전 메르스 라는 감염병이 한국을 덮쳤을 때 정부는 우왕좌왕했고 국민들의 불안은 커져만 갔다. 세계사망자 528명 중 불과 2개월 만에 186명을 잃었으니 정말 참담하고 부끄러운 재난 대응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은 정부와는 달랐다. 그 시절, 서울시가 메르스 상황 대책 상황실을 조직하고 감염경로 등을 공개하면서 전국이 국민주도의 메르스 전면전에 들어갔다. 국민들은 재난 대응 자원봉사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고 (사)울산시자원봉사센터 역시 재난전문자원봉사단을 구성해 공공시설·다중이용시설·학교·사회복지시설 등을 방문해 방역과 소독 자원봉사 활동을 펼쳤다. 뭐라도 도와야겠다는 봉사자들이 사회복지기관 휴관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 자가격리 이웃을 위한 음식 지원 활동 등을 진행했고, 어려움이 있는 곳엔 언제나 자원봉사자가 함께했다. 그야말로 국민이 메르스를 이기고 국민이 정부를 살린 것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감염자에 대한 빠른 진단과 동선에 대한 공지만큼이나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더 빠른 속도로 우리 사회를 삼키고 있다. 이처럼 사회가 불안에 빠지고, 패닉에 놓일 때 어려운 사람들은 더 어렵고 더 절실한 상황에 놓이게 됨은 자명하다. 정부의 손만 기다리기엔 너무 절박한 이웃들이 늘어나고 있다.

5년 전, 정부보다 빛났던 재난 대응 자원봉사를 재현할 때다. 코로나19는 과거 전염성 바이러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전염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바이러스로부터 피할 수만은 없다. 의사 등 전문가는 직접 싸워야 하고 확진자는 각자 싸워야하고 시민들은 함께 싸워야 한다. 지금이 바로 메르스 때 발휘했던 감염병 재난 관련 봉사활동을 다시 한 번 복기하여 발현해야 할 때다.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의료진과 확진자 응원 댓글 캠페인 등의 활동을 통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자. 사회복지기관 등의 휴관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 자가격리 이웃을 위한 작은 나눔 등은 정부의 기능보다 이웃의 손이 더 따뜻하고 빠를 수 있다. 확진자와 조우하지 않은 지역사회시설이나 경로당주변, 어린이집주변 등의 방역은 분무기를 짊어질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자원봉사, 일상의 작은 실천. 지금처럼 절실할 때, 지금처럼 어려울 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무엇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나부터 방역 등짐을 지겠다.